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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한 우물만 굴착왕, '78 박도권

연세 건축 총동문회에서는 다양한 동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합니다.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싶거나 오랜만에 소식을 묻고, 들어보고 싶은 동문들이 있다면 ysarch@gmail.com 혹은 카카오 채널 @연세건축총동문회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 Team a012


N잡이 난무하고, 평생직장이 무색해진 시대이다. 그리고 어쩌면 한국에서 가장 긴 시간을 하나의 직장에서 보낸 사람이 있다. 평사원으로 34년, 대표로 6년, 무려 40년이다. 사람이 한 우물을 파도 이렇게 깊게 팔 수가 있는가.

지금부터 한 우물만 판 굴착의 정석, 성공한 CEO인 동시에 CEO에 성공한 평사원 78학번 박도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마리오보타 부부와 밀라노 오페라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나도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사이



40년 동안 건축, 그리고 삼우
한 우물을 파기까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박도권이라고 한다. 78학번으로 입학해서 82년 2월에 졸업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삼우)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제 내년 2월이면 삼우에서만 딱 40년을 일한 셈이다. 82년 당시엔 군대에 가지 않고 특례보충역으로 뽑혀 바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설계는 서울 건축과 삼우 딱 두 군데만 특례보충역으로 일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을 40년 하는 것도 어려운데, 삼우 한 곳에서만 40년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이력서가 한 줄이다. 그래도 한 군데 오래 있던 덕분에 중간에 리비아에서 300 bed짜리 병원도 지어보고, 삼성전자, 삼성생명 관련된 일들도 셀 수 없게 했다. 제일 마지막 프로젝트가 리움 프로젝트 총괄이었는데 *마리오 보타, *장 누벨 이런 친구들이랑 일도 해보고 해 볼 수 있는 일들은 거의 다 했다.

         

*마리오 보타: 신논현 교보타워의 벽돌을 쌓은 그분
*장 누벨: 브래드 피트 딸 이름이 누벨인데, 이 분처럼 창조적인 사람이 되길 원했다는


당시엔 건축공학과만 있었던 것으로 안다.
입학부터 설계를 하고 싶었나?

79년 겨울이었을 거다. 2학년이 끝나고 독수리 다방에 동기 5명이 모여 있었다. 그땐 아무것도 모르면서 건축 얘기를 하는 게 그렇게 좋았다. 그 당시에 ‘하버드의 공붓벌레들’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유행했는데, 그룹스터디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독수리 다방에서 한 놈이 “야 우리가 뭐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라고 말을 꺼내서 1)마이건축의 강승우, 2)강인호 한남대 교수, 3)퍼듀대 교수였던 김철수, 4)이경수 그리고 5)나 이렇게 다섯 명이 모여 일산 백마에 50센티라는 작업실을 만들게 됐다.




출처: 조선일보


2학년 5명이, 심지어 일산 백마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2학년 5명이 건축이라고 해봐야 주택이랑 교회나 해봤을 거다. 우리가 뭘 알았겠나. 그냥 집 나와서 다 같이 밤새 놀고 떠들고 같이 학교 가고 같이 자취한 셈이다. 촌에 고립돼서 노는 게 재밌던 거지 뭐.


그때, 백마는 완전 논바닥이었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가 2만 원짜리 방에서 밥을 해 먹어야 하니 밥하기 싫어서 싸우고 굶고, 배고픈 놈이 밥하면 다 같이 우르르 먹었다. 당시 기차 배차간격이 1시간이었는데 기차 시간 놓치면 그날은 어쩔 수 없이 자체 휴강이었다.


















출처: google image


작업실의 목표가 있었을 것 같은데 무엇이었나?

당시 *국전이라는 공모전이 있었다. ‘다 같이 국전에 뭐 라도 만들어서 내자’는 생각 정도로 가볍게 작업실을 만들었고 결국 냈다. 당연히 바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그때 성인수 선배가 퇴근 후에 많은 조언도 주셨다. 우리가 하는 말이 시답지도 않았을 건대도 끝까지 들어주시고 “아 그래?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재밌겠다~”라는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그래서 신나게 했던 것 같다.

작업실에 지낸 건 짧았지만 그 이후 성인수 선배의 도움 아래 ‘포커스’라는 이름으로 명맥이 이어졌다. 이때 오히려 목표가 생겼다.            

*국전: 1982년 이전까지 진행된 대한민국 건축대전의 약어.



어떤 목표였나.

*공간 잡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국의 건축을 이끌어가는 서울대 홍대 한대’라는 글이 있었다. 사실 우리 친구들은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대체 우리는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대 건축과라는 것은 도대체 뭘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돌이켜보면 당시가 연대 건축과가 선배들이 열심히 일하시며 막 성장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어쨌든, 당시의 우리는 “후배들에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 정도는 보여야 하지 않겠냐, 가급적이면 우린 끝까지 있어보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리고 지금 다들 여전히 건축을 하고 있으니 그때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한다.            

*공간 잡지: 현재 space공간이라는 잡지로 공간건축에서 운영하던 건축 전문 잡지이다





이 남자는 30년 후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의 대표가 됩니다.



세계와 한국,
과연 설계 격차는 줄었을까?


다짐을 지킨 것 이상으로 더한 것 같다. 40년간 삼우에서 설계를 하며 갖게 된 소회 같은 것이 있을 것 같다.

해외현장에서 복귀하던 시점에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비행기 삯을 아끼기 위해 유럽 경유를 시켜서 복귀시켰다. 그때 파리를 통해 돌아오는 비행기였는데 경유하는 김에 일주일 정도 체류를 했었다. 그리고 그때 어마어마한 컬처쇼크를 받았다.


어떤 부분이었나?

두 번의 컬처쇼크가 있었다. 처음은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렸을 때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에스컬레이터는 위아래만 다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뭐야 왜 에스컬레이터가 앞으로 가냐” 전혀 생각도 해본 적 없던 경험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에펠타워를 보러 갔었는데 *남산타워 정도를 생각하고 갔던 나한테 그 웅장함을 마주한 경험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경험이었다.

일주일 정도 파리를 돌아다니면서 그저 부러웠다. 이런 것들을 보고 자라면 출발점부터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격차를 줄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에펠탑 324m / 남산타워 236.7m

















출처: allnumis


그리고 40년이 지났다. 지금은 어떤 것 같나?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리움 프로젝트에서 세 거장들과 일을 해본 후 한 번 해 볼 만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당시 세명의 유명 건축가와 일을 해서 화제가 많이 되었지만, 마리오 보타를 제외하면 대부분 우리가 진행했다. 두 건축가는 콘셉트를 만든 정도였다.

이제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국제 현상도 참여하고, 성과도 내고 있다. 40년 전에는 도저히 안될 것 같았던 경쟁이 이제는 되고 있다. 앞으로도 격차는 점점 더 줄지 않겠나.




렘 쿨하스와 즐거운 한때


한 회사의 대표로 6년째다. 직장인 커리어로는 황혼기인데 대표가 되어 달라진 점이 있나.

현업을 할 때는 정말 죽기 살기로 했다. 91년에 건축사 자격증을 받고 결심한 것이 있다. “오늘부터 나는 소장이다”, 이제 정말 회사를 나가면 소장이기도 했으니까. 마지막 리움 프로젝트 때 보통 새벽 1-2시에 퇴근했다. 일이 끝나면 점검하고 다음날 출근해서 진행할 수 있도록 다시 정리해두고. 내 프로젝트니까 내가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마지막 불꽃을 태웠던 거지.


경영자가 된 이후에는, 프로젝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 전부 나에게 초점이 맞춰질 것 아닌가. 그럼 중간 임원들은 모두 허수아비가 돼 버린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임원들 모두 모여서 매일 오전 다 함께 회의를 한다. 따로따로 보고를 받으면 프로젝트의 경중이나, 유무에 따라 무게가 달라질 테니까. 균형을 잡는 게 제일 어렵고 고민이다.



연세 건축의 DNA

동문회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동문회에 바라는 점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우선 동문끼리 뭐 서로 끌어주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연대는 일단 기본방침이 각자 생존 아닌가? 서로가 체질적으로 누굴 끌어주지도 못하는 것은 다들 인지하고 있지 않나.

그래도 잘 모르는 분야 혹은 일이 있어서 “아 이런 건 좀 궁금한데?” 했을 때 흔쾌히 알려줄 수 있는 존재 정도가 서로에게 되어 주면 좋을 것 같다. 그저 서로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지내는지는 듣고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워낙 금융이나, 당신네들처럼 건축이 아닌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을 테니.




그는 여전히 젊다


요즘엔 더욱 건축을 하지 않는 후배들이 많은 것 같다. 반면에 오랜 시간 건축을 해온 사람으로서 어떤 생각이 있는지 궁금하다.

난 지금이 참 좋은 것 같다. 일단 기본적으로 건축 설계를 배운 사람들은 무엇을 해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ALT(대안)에 대한 훈련을 계속 받지 않는가. 처음 땅을 가지고 설계를 시작할 때부터, 모든 단계에서 선택과 결정을 하는 훈련이 된다. 그것도 차근차근 단계별로. 이런 훈련을 받는 전공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건축을 전공하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할 수 있는 기본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전에도 우리 학교 출신들은 똑같았다. 삼우를 다니던 후배들도 조금 다니다 보면 “형 나 그만두게요”,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은 일이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연극이나 음악을 하는 후배들도 많았다.


이쯤 되면 학풍이라고 봐야 하는 건가

맞다. 우리 DNA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야 건축 이게 좋으니까 계속하고 있던 거지.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꿈으로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다.

꿈까지는 아니고, 아내와 이야기했던 건 은퇴하고 네팔 고아원에 가서 집사람은 빨래하고 나는 운전하는 삶을 살자고 했었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로 그건 집안 사정이 있어 조금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도 사회적으로 환원하고 살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혜택을 굉장히 많이 받은 세대인 만큼 무언가 베풀며 살아야 좋지 않겠나.

우선은 건강히 은퇴부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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