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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사, 시공사, 공기업 그리고 워킹맘, 03 양은주

릴레이 인터뷰는 다양한 동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담아냅니다.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싶거나 오랜만에 소식을 묻고, 들어보고 싶은 동문들이 있다면 ysarch@yonsei.ac.kr 혹은 카카오채널 @연세건축총동문회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33대 연세건축 총동문회의 첫 번째 인터뷰이는 연세건축 학생회 창단 멤버이자 건축학 5년제의 첫 학번 03학번 양은주 동문이다. 설계사와 시공사를 거쳐, 대학원 그리고 개발분야 공무원까지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동시에, 두 아이의 엄마인 워킹맘 양은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03학번이고요! 저희 학번이 건축학 5년제 첫 학번이었어요. 5년제가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다행히 5년을 잘 버티고 졸업할 수 있었어요. 졸업 후에는 바로 dmp라는 설계사무소에 들어갔고요. 거기서 1년 반 동안 현상설계와 실시설계를 담당했습니다. 이후엔 다른 곳으로 옮겨가며 지금이 되었네요.


5년제 첫 학번 이셨군요. 당시에 입학할 때도 설계를 생각하고 입학하셨던 거예요?

네네! 저희 때는 러브하우스 세대라고도 했습니다. 저희가 고등학생 때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라는 집을 고쳐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거보고 건축과 꿈꾸던 친구들이 종종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저였습니다.

학교에 와서 건축설계와 러브하우스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미디어의 영향으로 건축과를 오게 된 셈이죠.

러브하우스가 쏘아올린 졸업설계故 장림종 교수님 생신 파티, 항상 

03학번이면 어느새 20년 전이네요. 동문님께서 학교 다니실 땐 주로 어떤 것들을 하셨어요?

어머 벌써. 저는 별로 오래된 거 같지 않은데 20년 전이라고 하니 정말 멀게 느껴지네요. 저는 여느 신입생들처럼 밤새 술 먹고 놀기도 하였고 아카라카, 연고전 등의 축제도 기억이 남아요. 그 당시 신입생들의 학교 생활은 거의 비슷했던 거 같아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공대 앞 잔디밭에서 짜장면 시켜먹던 시절이었어요. 그리고 학교생활에서 가장 큰 부분을 ZIT이라는 작업실과 학생회 활동으로 보냈고요.


학생회 활동은 어떤 것 이셨어요?

저희가 입학했을 때는 학생회가 없었어요. 제가 학생회 창단 멤버였어요. 2005년쯤이었나 교수님과 학과의 승인을 받고 학생회를 만들게 됐어요. 그 당시 연세 건축 총동문회에 저희가 만든 학생회 로고가 새겨진 배지와 스티커 같은걸 팔아서 선배님들께서 후원금을 많이 주셨던 기억이 있고요.

지금의 연세 건축 로고 중 하나도 그때 학생회 함께했던 동기가 만든 로고예요!

2006년 학생회 소속으로 연세건축 총동문회 참석


새로 학생회를 만드신 거면 정말 이런저런 일들 하셨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아무래도 학과, 학부 이런 게 바뀌면 행사도 바뀌게 되었고요. 전공을 받고 2학년 때 가는 건축과 OT가 바로 저희가 기획한 행사였어요. 저는 학생회에서 회계와 서기를 맡았고요. OT비용을 수납하는 일로 신입생들과 연락을 자주 했던 기억이 나요.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학생회 창단 멤버의 스웩


ZIT도 거의 초창기에 계셨을 것 같은 데 맞나요?

맞아요. 제가 ZIT 창단 멤버이고 저희 때 QN까지 거의 동시에 만들어진 걸로 알고 있어요.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서문 근처 pc방 있던 곳에 월세 잡고 zit이라는 작업실을 만들었는데 그때가 2005년이었습니다.


ZIT도 벌써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거네요

맞아요. 처음 자리 잡은 곳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도 신기하고 지금까지 이어오게 해 준 후배들에게 너무 고맙죠!

거기서 작업한답시고 매일 밤새고 치킨도 시켜먹으면서 지냈죠. 작업이든 뭐든 함께한 시절이었어요. 2006년 월드컵을 다 함께 보러 가기도 했고요. 설계 과제하다 밤에 돌연 한강으로 달려가서 서로 진로와 연애 고민도 나눈 기억도 새록새록 나네요. 그렇게 그 시절을 보냈어요. 신나게 놀다가 돌아와서 잠만 자고, 수업 직전에 부랴부랴 과제를 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요.

어느새 그 친구들이 본인 사무실 소장이 되고, 사회 각지에서 멋지게 살아가고 있으니 세월이 참 빠른 거 같기도 하고요.

2007년 OPEN ZIT행사, 이 작업실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작업실에 오랜 시간을 보내신 만큼 진로도 바로 설계사무소를 택하셨던 거네요.

저는 사실 오로지 설계만 생각하면서 학부나 설계사무소를 다닌 건 아니었어요. 진로를 고민할 때는 시공 쪽 진로도 생각했고요. 기획이나 개발업무도 관심이 있었죠. 그래서 dmp에 1년 반 남짓 다니고 바로 삼성물산이라는 건설회사로 이직하게 되었어요.


건설사로 이직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실시설계를 1년간 하게 되었는데 기본설계부터 실시설계와 인허가까지 설계 전 과정을 신입 때 수행하게 된 거죠. 사실 돌이켜봐도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제가 설계한 게 실제로 시공까지 이어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일을 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시공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게 되었어요 더 늦기 전에 건설회사에도 지원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dmp건축에서의 1년


삼성물산 이직은 신입으로 하신 거예요?

네. 다시 신입으로 입사해서 현장에 배치받았어요. 당시 건설사 중에 삼성물산 건설부문 신입은 모두 현장에 배치되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제 삶에 큰일이 일어났어요. 신입사원 동기인 현재의 남편을 만나서 신입사원 때 결혼이란 걸 하게 됩니다!!


그 흔하지 않다는 신입사원 결혼을 해내셨군요. 결혼 후에는 커리어를 어떻게 이어갔나요?

네. 삼성에서는 그렇게 결혼생활과 현장생활을 함께하면서 한 7년 정도 다녔어요. 다행히 서울 현장에 발령받았어요. 일원동에 삼성서울병원 현장에서 오래 있었거든요. 당시 병원이 리모델링과 증축, 신축이 많았어요. 결국 한 8건 정도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요.


여러 업무를 이어가신 얘기를 듣고 보니, 정말 바쁘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아무래도 현장생활을 하다 보니 가족계획은 미루게 되더라고요. 가정과 커리어를 함께 챙기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결국 첫아이를 갖고 출산했어요. 7년간 정신없던 직장생활을 뒤로한 채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대학시절 식탁을 뛰노는 아들


다음 장으로 삶이 넘어간 거군요.

네. 사실 퇴사 전에 대학원에 지원했어요, 이 기회에 석사도 따고 싶었거든요. 대학원은 그래도 육아와 병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떤 공부를 하셨던 거예요?

제가 삼성물산에 있을 때 병원 프로젝트를 하면서 개발 프로젝트에 잠시 참여했어요. 지금 병원부지 맞은편에 병원을 새로 짓는 프로젝트였어요. 그때 도시 개발 쪽 커리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어요.

결국 석사는 도시계획을 염두해서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 전공으로 가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도시계획이랑 부동산 개발 쪽으로 연구하고 논문도 부동산 쪽으로 썼고요.


석사 후에는 어떻게 커리어와 삶이 진행되었어요?

석사 후 둘째 출산과 두 아이 육아로 현실적인 고민과 문제가 생겼어요. 두 명을 다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 왔어요. 결국 제가 다니고 싶은 회사를 선뜻 다닐 수 없게 된 일이 있기도 했고요. 사실 석사 졸업 후에 몇 군데 오퍼가 있었지만 마음을 내려두었어요.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고 나야 저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게다가 공교롭게 코로나라는 일이 있다 보니 더욱 쉽지 않더라고요. 어린이집 잘 다니던 첫째도 어린이 집에 가지 못하게 되었으니까요.

뉴스에서 많이 나오던 육아를 집에서 온전히 담당해야 하던 상황이 저에게도 일어난 시기였어요


정말 챙겨야 할 게 많던 시기를 보내셨을 거 같아요. 동시에 회사를 선택해서 다니는 결정을 하기 쉽지 않으셨겠네요

맞아요. 그리고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만큼이나 주부의 삶도 바쁘게 돌아가던 때였어요! 정말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대단함을 느끼던 시기였죠. 가족들 밥 챙겨주고 집안 청소 빨래부터 쓰레기통 비우는 일들도 사소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사실 돌이켜보면 아이 키우고 집안일하면서 오히려 멀티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이 길러진 거 같아요.


열심히 해온 일들이 그립지는 않으셨어요?

부모라면 누구나 그렇듯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보면 제 커리어가 단절되고 힘든 것들이 전부(사실 전부는 아니고 한 90%?) 만회되는 거 같아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항상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엄마가 되는 것도 인생에서 소중하고 엄청난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지금은 서울시 공공개발기획단이란 곳에 임용되어 출근을 앞두고 있어요. 진짜 워킹맘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겠네요.

아이들이 주는 것, 행복 그 자체



아 이제 다시 육아와 커리어를 병행하게 되는 거네요

맞아요. 다행히 제가 이전부터 고민을 했던 방향이었어요. 진로의 방향이 바뀐 것에는 육아도 무시 못할 이유긴 하지만 개인적인 커리어도 이 방향으로 가고 싶었거든요. 이제 설계사-건설사-공무원 이렇게 커리어가 바뀌게 된 셈이네요.


새로운 삶을 시작하셔야 하는데 앞으로의 계획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조직에서 잘 적응하고 가정생활도 잘 꾸려가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20여 년 전 저를 생각해보면 20년 뒤에는 거창한 무언가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쯤 되면 사회에서도 유명해지고 뭔가 아이들도 엄청 잘 돌보면서 일도 잘하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그런 여성이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모습인 게 사실이고 냉정하게 말해서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하지만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지금, 뒤돌아 봤을 때 후회되거나 부끄러운 일이 많지 않게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만족하고 있어요. 아주 사소하고 작은 기억들이 지금의 삶을 만족하게 해주는 것들이 되고 있고요. 앞으로도 그런 평범한 일상을 차근차근해가고 싶어요. 어쩌면 가장 큰 꿈같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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