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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때 까지 가 본 남자, 81학번 진희선

릴레이 인터뷰는 다양한 동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담아냅니다.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싶거나 오랜만에 소식을 묻고, 들어보고 싶은 동문들이 있다면 ysarch@gmail.com 혹은 카카오채널 @연세건축총동문회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민주화 시대, 사회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학생운동을 했던 한 학생이 졸업 무렵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32년간 서울시에서 사회를 위해 일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학교로 돌아와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다.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시 부시장을 역임하고 특임교수로 모교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 81학번 진희선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자기소개 부탁한다

연대 건축과 81학번 진희선이다. 87년에 기술고시를 합격하고 88년 4월부터 공직 생활을 했다. 그 후 서울시에서 32년간 근무하고 작년 6월 말 퇴직했다. 퇴직 후 8월부터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특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특임교수라는 명칭이 생소한데 어떤 역할인지 궁금하다

특수한 임무를 부여한 교수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정교수와 겸임교수의 중간 정도 되는 것 같다. 모든 적은 학교에 두지만 자율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교수다. 보통 장/차관급 직무를 지낸 사람들의 사회적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수해주기 위해 특별히 임명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학교의 배려에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떤 강의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학기에는 도시 정책과 재생이라는 수업을 했다.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서울의 전반적인 역사를 살펴보고 그 안의 정비, 개발, 재생 과정을 살펴보는 수업이었다. 이번 학기는 대도시 이슈와 현안 과제라는 강의를 하고 있다. 오늘날의 도시가 갖고 있는 이슈와 문제들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것 인가를 함께 공부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시대적, 문명적 전환을 맞이하고 있는데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 인가에 대해서도 함께 공부하고 있다.


긴 공직생활을 끝내고 모교에 돌아온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그렇다. 입학한 지 39년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공학관이 하나였는데 지금은 몇 개가 더 생겼더라. 외형은 많이 변했지만, 재학생 시절 부족한 돈으로 막걸리를 사서 동기들과 옹기종기 모였던 장소였고, 한편으로는 최루탄을 맞아가며 대모를 했던, 개인적으로 여러 기억을 담고 있는 공학관이기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학창 시절에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군입대를 하기 전까지 KUSA라는 동아리에서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었다. 고등학교를 광주에서 다녔고 고3 때 광주 민주화 항쟁을 겪다 보니 학과 공부보다 사회문제 해결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 동아리에 들어가서 열심히 활동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2학년 때는 장학금도 받았던 성적이 3학년 1학기가 되자 학교에서 쫓겨날 성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민이 많을 시기였을 것 같다

그렇다. 정신 차려보니 3학년이었고, 학생운동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진로를 선택할지 결정을 해야 할 시기였다. 고민 끝에 군입대를 했다.


군 생활을 하며 공직자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나

아니다. 전역 후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했었다. 군대를 다녀오니, 학생운동은 오히려 더욱 치열해져 있었다. 군부 독재의 막바지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무심코 본 신문에서 기술고시라는 게 있다는 광고를 발견했고, ‘복학하기 전에 시험이나 보자.’하고 치른 1차 시험이 덜컥 합격했다. 2차 시험은 복학 후에 준비해야 했는데 교내에는 기술고시 관련 자료가 많이 부족했다.


지금은 학과에서 기연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고시 고시생을 위한 지원을 늘려가고 있는데 당시에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나

당시 우리 학교 분위기가 공직자를 양성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교수님을 통해 한양대에서 자료를 얻어다가 준비를 해서 이듬해 11월 최종 합격을 했고, 88년도부터 공직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공직에 있을 때는 어떤 일을 했었나.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거나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업무로 보자면 도시, 건축, 주택과 관련된 일을 했고, 정책적으로 보자면 도시 개발사업, 재개발, 재건축, 도시 재생 사업과 관련된 일을 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주상복합 문화를 정립한 타워팰리스의 인허가 과정의 전반을 맡았고, 제2 롯데월드가 지어질 때 관련 업무도 맡아서 했었다. 그리고 현대그룹 GBC 관련해서 사전협상과 허가도 맡았었다. 어쩌다 보니 서울 3대 초고층 빌딩 업무를 다 맡았었다.

서울시를 위해 쉴 새 없이 일했다.


서울시 부시장까지 역임했다. 갈 때 까지 가본 것 아닌가.

서울시 부시장을 끝 마치며 ‘아 이제 큰 숙제를 끝냈구나.’라는 마음이 가장 컸다. 아무래도 책무가 큰 직책이다 보니 책임감에서 해방된 것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연대 건축과 동문들을 보면 늘 자유롭고 경쾌함 톡톡 튀는 사고가 특징인 것 같다. 수직적인 사회에서 수평적인 사회로 완전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이런 성향이 서울시 부시장을 하게 되는데 많은 도움을 주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건축과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있었나

입학하고 보니 내 체질이 공대 체질이 아니더라. 그래서 공대 안에서 가장 공대 같지 않은 과가 건축과 같아서 들어왔다. 근데 건축과는 또 미술인 거지. 한 달 내내 고민을 해서 그림을 그려가도 동기가 3-4일 그려온 것만 못했다. 그러다 보니 흥미를 못 붙였던 것 같다.


그런데 건축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던데 어떻게 된 건가

건축과를 나왔는데 건축 공부를 너무 안 했다는 죄스러움이 있었다. 마음의 빚을 갚겠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한편으론 언젠가 내 집을 내 손으로 짓고 싶다는 로망도 있던 것 같고. 내 건축사 선생님들이 우리 학교 동문이었다. 자격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건축 계획을 너무 재미있게 가르쳐준 것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83 현상일, 83 황철호에게 이 기회를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한다.


시간 남을 때는 주로 무엇을 하나

산에 가는 걸 좋아한다. 서울시 있을 때 산악 회장을 했다. 5년 동안 같은 산은 오른 적이 없을 정도로 정말 다양한 산을 많이 다녔다. 지금은 혼자 큰 산을 가기엔 부담스러워 집 근처 남산을 열심히 다니고 있다. 요즘은 학교에서 점심 먹고 나면 학교 둘레를 도는데 여유가 있으면 안산 둘레 길도 돌고 오곤 한다.

멋이라는 게 쏟아져버렸네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예전에 ‘현의 시대를 통화하며’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공직에 있으면서 가장 자부심을 느꼈던 건 공공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었다.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는 공간을 다룬다는 것은 무거운 책임이 따르지만, 잘 마무리했을 때의 뿌듯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공직에서 내려온 지금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먹고 사는데도 보탬이 되어야지.


끝으로 동문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동문들 각자가 충실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동문회의 역할이지 않을까 한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면서 개개인들이 ‘나는 어떻게 살아야겠구나!’ 결정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학부과정 중에 선배들의 멘토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다. 설계, 시공, 공직자, 사업가 등등 선배들의 다양한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는 수업이 있다면 후배들이 본인의 삶을 결정하는데 많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단순히 특강 형식이 아닌 정규 과목으로 만들면 졸업 후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훨씬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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