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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대신 외화벌이, 11 김주혜

릴레이 인터뷰는 다양한 동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담아냅니다.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싶거나 오랜만에 소식을 묻고, 들어보고 싶은 동문들이 있다면 ysarch@yonsei.ac.kr 혹은 카카오채널 @연세건축총동문회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 이 인터뷰는 덴마크 현지 시간, 02:00 am 진행된 인터뷰임을 밝힌다.

대학생활 내내 당연히 유학을 갈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반쯤 타협하는 마음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전 인터뷰이 14학번 이주희와 같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설계를 하고 있는 김주혜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한다.

덴마크에 혈혈단신, 14 이주희 를 아직 안보셨다면? 바로가기


자기소개 부탁한다

11학번 김주혜고, 지금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Bjarke Ingels Group, BIG에 다니고 있다.


덴마크에는 언제부터 나가 있었나

16년 여름. 15년에 모든 학사과정을 마친 후 졸업유예를 해 둔 상태였다. 그 때 인턴쉽으로 나가서 지금까지 덴마크에 지내고 있다.


지원을 할 때는 어떤 곳들에 지원했나

처음엔 당연히 big만 지원한 건 아니었고 유럽 미국 가릴 것 없이 다 넣었다. 한 100군데 이상. 일단 사이트에 들어가서 지원했다.


지원 과정은 어떻게 되나

일단 뭐 한번쯤들어본 유명한 건축사무소는 당연히 들어간다. 그리고 그냥 무작정 구글에 유럽 건축오피스, 미국 건축오피스, 대도시 건축오피스 이런식 으로 검색을 한다. 그리고 다 긁어서 하나하나 들어가보고 디자인회사 아닌데는 거르고 자체적으로 오프닝 안열려있어도 리셉션 메일같은거라도 지원서 보내는 식이다.


100개를 넣으면 답장은 얼마나 오나. 오프닝이 없던 곳에서도 답이 오긴 하나?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확실한 건 답장 자체가 거의 오지 않는다. 내가 부족했던 탓도 있고 어차피 뽑지도 않던데 지원한 거니까 그럴 수 있다. ‘모로 쿠순노키’는 열려있지 않던 곳인데 답이 온 기억이 난다.


해외로 나가려던 이유가 있나

왜라기 보다는 내가 한국에서 별로 진로고민을 해보지 않은 것 같다. 막연히 유학을 간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 시기가 되니까 내가 유학준비에 마음을 잘 잡지 못하더라. 그래서 포트폴리오도 있겠다. 겸사겸사 해외인턴에 지원해본 것이다.

스칸디나비아의 모습이란 이런걸까


유학을 가려고 만든 포트폴리오가 해외인턴으로 쓰인 셈인가

맞다. 원래 인턴쉽도 해외에서 일하며 글로벌 아키텍트의 추천서를 받으려던 마음도 있었다. 그 때 까지도 유학을 가려던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러고 있네.


처음 덴마크에 나갔을 때 어땠나.

Disaster.  유럽이라는 땅에 생전 처음 와보는데 일어나서 잠자기 전까지 영어로 떠들어야 되니까.

아무래도 적응하기 쉬운 환경은 아니었다. 심지어 뉴욕이나 그런 대도시는 아시아 인프라가 많지만 코펜하겐은 그런 도시가 아니다. 

첫날 문 앞에서 줄담배를 한 세 대는 피운 것 같다.


첫 인턴 기간이 어느정도였을지 궁금하다.

6개월. 그리고 연장할 때도 단위는 6개월이다. 사실 이 부분은 비자 갱신 기간 때문에 그렇다. 인터네셔널 인턴은 6개월마다 비자갱신을 해야 된다.


지금은 그러면 어떤 형태의 계약인가.

나는 permenant contract. 흠 한국말로 번역하면 정직원 정도려나 지금 비자는 work permit이지.

5년 마다 갱신되는 비자이다.


인턴 끝난 후 제안이 오나. 계약을 했으니 어느정도 만족스러웠기 때문일 거 같은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선 여기는 자리를 제안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일해도 본인이 지원해야한다. 물론 같이 일한사람들의 레퍼런스(*추천)을 얻을 수 있지만 결국 주체는 본인이다. 

회사가 나서서 하지 않음 일단 뭐 한국처럼 정시 모집이아니라 수시 모집이니까. 


그리고 만족스러웠다기 보다는 인턴 때 정말 열심히 일한 나에 대한 어느정도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5년이다. 계속 해외에서 일을 할 생각인가

나는 좀 발만 담구는 거를 싫어하는 편이다. 내가 그래도 여기서 주체가 되었구나 여기서 배움이 있었구나를 느끼기 전까지는 아마 남아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실 한국 떠나 온 기점으로 10년을 채우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새 5년밖에 안남아서 5년 더 해야 하나 싶다. 


아. 이러다 마흔 각인가;;

사실 나도 한국에 가족이 있고 친구도 있으니 결국 언젠가는 돌아갈 곳이라는 생각은 있다. 다만 영양가 있게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보고싶은 사람들도 있지만, 현지 적응도 이미 완료함


첫 인턴도 해외로 지원했고, 유학도 생각했다. 해외에서 건축을 하는 데에 기대감이 있던 것인가

어느 정도는? 막연한 로망 같은게 있었다.


그래서 그 기대감이 충족되었나.

인턴일때는 정말 뭣도 모르고 갔기 때문에 기대보다는 긴장이 훨씬 컸다. 그냥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래도 분명 만족스러운 부분은 아무래도 big의 구조가 수평적이다 보니 좋은 시니어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 다들 자기일에 굉장히 열정적이고 가정에 충실하다

그 당시 가장 인상이 남는 건 ‘big에 가면 이렇게 건축을 한다’ 보다는 ‘아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프로젝트 스케일도 정말 다양하고 낸가 학교에서 하던 거랑은 완전 다르다 보니 도화지에 새로 그림을 그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조금만 잘해도 그렇게 칭찬을 해준다

손을 턱이 괴면, '오늘 저녁 메뉴'가 생각난다.


굳이 인턴일 때라고 한 거 보니 다음이 있어 보이는데

지금은 흠. 아무래도 인턴일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동안 회사 규모도 커지고 변화가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책임져야 할 부분들이 생기기도 하니까 다른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생각은 여기 몇 년 더 있다고 내가 업무적인 스펙트럼이 넓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진심으로 이직을 고민 할 시기인가

아무래도 그렇다. 사실 아직도 내가 뭘 원하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움직여야 할 때라 생각하기도 하고 10번 중 한두번은 진학을 고려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또 학교를 들어가서 건축을 공부 할 만큼 이 일이 좋은지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관심보다 프로페셔널로서 발전하려고 가는 느낌이고 아 몰라. 애증이다 애증.

어쨌든 내 직업이니까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고민하게 되는 건 당연한 것 같다..


BIG면 다음 행선지가 주로 어떤 곳인가

뭐 계속 이 일을 한다고 한정해서 생각해보면 다수는 비슷한 규모의 회사 안에서 로테이션이다. 물론 사람마다 어떤 일을 해왔느냐, 어떤 프로젝트를 했냐 에 따라서 다음 행선지는 분명히 달라지는 것 같다. 작은 곳으로 가기도 하고 분야가 달라지기도 하고.


해외 취업 후 국내에 들어올 때 메리트가 있다고 느끼나

국내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하더라. 그런데 나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일단 시장이 다르지 않나. 뭐 어디서 일했냐가 중요하기도 하고 어떤 경험을 했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덴마크도 실무 후 건축사를 따는 자격이 주어지나

없다 그런 거. 내가 이직을 고민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 곳은 건축학교만 나오면 인증이 끝이다. 실무에 대한 공증이라는 게 없다. *복세편살 이 나라 종특인 듯. 그래서 다들 행복한가보다.

*복세편살: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그러면 업무강도도 낮을 것 같은데

당신이 낮이라고 내가 낮인 건 아니다. 여기는 인터네셔널들이나 다른 유럽국가에서 온 친구들이 많은 편이다. 덴마크인이 절반정도 되나. 업무강도는 그런데 어떤 단계냐, 어떤 프로젝트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니까. 나는 지난 주말부터 오늘(목요일)까지 90시간째 일하고 있다.


무슨 프로젝트길래. 회사에서 주로 어떤 일들을 해왔나.

지금은 컨셉스토어를 하고 있다. 주로는 없다. 매번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마스터플랜도 하고 타워프로젝트도 참여했다. 인턴일 때는 캠퍼스랑 파빌리온도 했으니, 대체로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봐야 될 것 같다.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나는 사실 해외라고 해봐야 여기. 국내에선 경험도 없어서 비교를 하기는 어렵더라. 

다만, BIG의 경우에는 연차별로 할 일이 나눠 진다고 할 수는 없고 각각 프로젝트마다 역할에 따라 할 일이 구분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BIG의 얘기이다. KPF나 SOM 같은 코퍼레이션들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BIG나 KPF를 예를 들어서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

내가 KPF는 다녀 보질 않아서 그쪽은 잘 모르겠지만, BIG는 일단 원맨 오피스다. 물론 파트너들이 있지만 모든 디자인 결정을 완전히 내리지 않는다. 비아케한테 의존적인 편이다. 그리고 규모는 커졌지만 여전히 design oriented 회사이다. 음 디자인이 프로젝트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차이 정도이지 않을까?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고 건축이 아닌 건 아니니까. 접근법이 다른 거지.


그러면 자신은 둘 중 어느 쪽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나

머리로는 테크니션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가슴은 디자이너다. 솔직히 즐겁다. 내가 만든 게 아름다우면 즐겁지 않나. 물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있다. 

결국 우리 회사에서 가장 돈을 많이 받고 귀한 대접을 받는 분들은 아름다운 디자인을 하는 테크니션이거나, 엄청난 테크닉을 가진 디자이너이다. 결국 둘 다 잘해야 한다.


비아케와 부대끼며 프로젝트도 진행하는가

그런 거 없다. 그 분은 뭐라고 해야 할까. 방향 제시만 한다. 우리가 스터디해서 업데이트 하면 코멘트만 해주는 편이다. 안중에 없는 프로젝트면 하지 않는다. 뭐 지 맘대로다. 정신 좀 차려야 한다 아주. 


지금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나. 월세가 어느정도인지 궁금하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언니와 쉐어하우스에서 지낸다. 요즘은 제대로 된 곳에 쉐어하려면 (3,4인 기준) 6000dkk정도는 내야 한다. 한국돈으로 100만원정도? 그래도 중심지에서 조금 벗어나면 4000-5000정도 사이도 있더라.


급여는 어느정도 수준인가

다른 덴마크 회사는 모른다. Big 기준으로 인턴은 레벨1이 한달에 세후 6000dkk(100만원)정도 수준이다. 생각해보니 배고프고 서러웠다. 돈 내고 일을 한 셈이다. 열정페이. 솔직히 손 벌릴 수 있거나 모아둔 돈 있는 사람만 올 수 있다. 미국은 많이 주던데 유럽은 대체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존버에 성공하면 정규직은 어느 정도인가

초봉 기준이다. 세전 36,000dkk(약 48,000EURO) 정도. 세금이 36%니까 일아서 계산하면 될 것 같다. 


물가는 어떤 편인가. 월세를 보면 그렇게 비싸지 않을 것 같은데.

월세는 싼데 물가는 런던에 비교해도 높다. 이만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다. 사실 비용대비 맛있는 음식이 별로 없어서 외식을 잘 안한다. 사실 **(험한 말) 외식할 시간을 줘야 하지. 뭐 그래서 결국 월세 내고 저축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생각해보니까 월세는 왜 내고 있나 싶다, 쓰질 않는데. **(험한 말)


저런.

하지만 여기는 연차가 거의 한달 수준이다. 오늘 마감이니까 내일부터는 쉰다. 


이제 마지막이다. 이 글을 굳이 본 사람들에게 할말이 있나.

혹시 누군가 후배가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너무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라고 해주고 싶다. 여기 써 있는 내 말도 대충 보고 넘겼으면 좋겠다. 사람마다 상황이나 조건이 다 다른데 정도가 없지 않나. 대충 맞춰가면서 열심히 사는 거지. 


그러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있나

적당히 해라 미련한 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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